“개천예술제, 학생 중심 종합예술제로”
제270회 제2차 정례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
1949년 영남예술제로 시작된 계천예술제는 명실공히 국내 최대·최고의 종합예술제로 그 명성이 전국에 자자했다.
특히 1961년부터 1968년까지 8년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만큼 국가적 위상을 지닌 축제로 “개천예술제가 열리는 동안만큼은 대한민국의 예술수도는 진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과 성황을 이룬 행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74년의 역사를 지닌 개천예술제는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오히려 과거 부대행사였던 남강유등축제가 더 큰 인지도와 명성을 얻으며 마치 ‘작은 집이 큰집 되고, 큰집이 작은 집이 된’ 격으로 개천예술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
그 원인은 첫째, 종합예술제의 약화와 전문예술제의 확산이다. 현재 개천예술제는 국악·무용·문학·미술·사진·연극·연예·음악·시조경창 9개 분야에서 경연이 치러지는 전국 유일의 종합예술제다. 그러나 최근 춘천연극제, 부산영화제, 토지문학제 등 단일 장르 중심의 전문예술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둘째, 학생 수 급감으로 인한 참여 기반 약화다. 1980~1990년대 진주·진양지역 인구 약 35만 명 중 무려 12만 명이 학생이었으나 현재 초·중·고 학생 수는 3만 7000여 명에 불과하다. 교육도시 진주의 위상 약화가 자연스레 개천예술제 학생부 경연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에 개천예술제는 학생 중심 종합예술제로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현재까지 계속된 성인부 예술제를 폐지하는 것이 아닌 학생부의 상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대통령상 등 상격 강화, 교육부총리 등 국가 주요 인사 참여 적극 유도 등으로 명실상부한 학생종합예술제로 성격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실현되면 전국 각지의 학생·학부모가 진주를 찾는 ‘내진 효과’가 발생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개천예술제를 통해 데뷔한 낙화의 이형기 시인도 당시 진주농림학교 학생이었고 판소리 명창 안숙선 역시 어린 시절 개천예술제에서 공연했다.
우리 역사는 이미 개천예술제가 미래 예술가를 배출하는 등용문이었음을 증명한다. 현재도 개천예술제에서 학생부가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만큼 시에서 적극적으로 행·재정적 지원을 한다면 침체된 예술제를 전국 최고의 학생종합예술제로 부활시킬 수 있다.
진주는 대한민국 대표 교육도시이자 문화예술도시로서 그 브랜드 가치를 유지·발전시키며 소중한 자산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